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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8 집떠나면 고생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청계산에서 경기대로 내려가는 코스가 있어 토요일 산행후에 근처에 사는 친구와 만나 한잔하기로 했다. 전날 과음으로 일찍 잠들었더니 새벽 1시반에 눈이 떠졌다. 다시 잠도 안오고 낭패다. 영화 한편보고 일찍 갔다 일찍 오자라는 마음으로 대충 챙겨 집을 나섰다.

아침을 먹기위해 선릉 근처의 24시 설렁탕집을 찾아 해장국을 시켰다. 5시가 조금 늦은 시간인데 아직도 술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르기전 너무 거하게 먹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재동의 화물터미널에서 내려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옥녀봉에 도착하니 배에서 슬슬 신호가 왔다. 참고 석기봉 근처의 화장실까지 가서 볼일을 보기로 했다. 신발끈이 느슨하고 밀림으로 보행이 간혹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귀찮고 걷는걸 멈추기도 그래서 그냥 갔다. 난 이 기본을 지키지 못한 죄로 나중에 합당한 고통을 치룬다.
 
화장실을 가겠다는 일념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가고 있는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안개가 끼고 길들이 낙엽으로 뒤덮혀 있어 길을 잘 못든것이었다. 꽤 벗어난 것 같은데 오늘은 목적지가 확실하므로 다시 되돌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어 문득 여기서 볼일을 볼까 하는 흑심이 들었지만, 가다보면 화장실이 있고 대충 참을만 하니 그냥 가기로 했다.

저멀리 목적지인 화장실이 보인다. 시원하게 일을 끝내고 이수봉을 향해 갔다. 이수봉에서는 청계산을 다니며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국사봉을 향했다. 국사봉에 도착해서는 가야할 곳인 하오고개와는 반대로 길을 잡고 내려왔다. 내려와보니 인터넷에서 잠깐 봤던 풍경과는 틀렸다. 표지판을 놓쳤나 해서 산을 다시 되돌아 올라 가보고 이쪽으로도 가보고 저쪽으로도 가보고 했지만, 확실히 잘 못내려 왔다는 것을 알았다.

큰길로 내려와서 돌아다니다 근처의 상인들에게 바라산이 어디로 올라가는지 물어봤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교산 방향을 물어보고 일단 그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표지판들을 보니 이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분당이었다.

걸어가다 보니 운중터널이 나왔다. 이 근처에서 한 아저씨에게 바라산을 물어보니 친절히 길을 알려주신다. 걸어 가기에는 조금 멀고 2.5km 정도 된다고 하셨지만, 2.5km라도 남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와서 확인해 보니 그곳에서 서광사까지는 5.5km 정도였다.

분명히 알려준대로 갔고 2.5km를 더 지난 것 같은데 바라산의 '바'자도 보이지를 않는다. 또 잘못온건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한시간여를 걸어가니 드디어 바라산의 팻말이 보였다.

이젠 다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도가도 등산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아저씨한분께 물어보고 바라산의 위치는 파악했다. 올라가야할 길에는 큰집들이 가로막고 있고 길이 있을 것 같아 가볼려고 하면 '개인사유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보였다. 그래 절에는 올라가는 길이 있겠지 하고 팻말에서 본 서광사로 가보기로 했다.

산길을 가야되는데 두시간 넘게 아스팔트 길을 걷고 바라산은 오르기는 커녕 바라만 보고 있으니, 털썩 주저앉아 아까 길 물으면서 매점에서 산 맥주한캔을 마시며 잠쉬 쉬어본다. 다행히 서광사 윗쪽으로 '등산로'란 팻말을 발견하고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올라가 꽤 큰길이 나왔는데도 사람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혹시 바라산이 아닌거 아닐까? 아니면 정상에서 확 떨어져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찾아 올라간 바라산 정상. 올라오는 동안 무릎의 통증을 느꼈다. 걸음이 이상하고 아스팔트길을 오래 걸어서인 것 같다. 아직 "바라산->백운산->광교산->형제봉->경기대"까지 한 십몇키로는 더 가야될 것 같은데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있고, 길도 확인 안하고 지도조차 안가지고 오고, 무릎보호대나 스틱도 안가지고 온 나의 안일함은 벌을 좀 받아야 할 것 같다.

백운산에 도착할즈음 되니 무릎으로 인해 걷는 자세가 엉거주춤 말도 아니다. 일단 앉아서 양말을 갈아신고 그제서야 신발끈을 조절했다. 그래 나 같이 성의없는 놈은 아파도 싸다 싸. 일단 고통을 완화한다는 구실로 막걸리 한사발을 사서 마시고 광교산으로 출발했다.

가다보니 사거리가 나왔다. 경기대를 바로 갈수 있는 형제봉 이정표도 보였다. 정상이랑 반대방향인데 그러면 정상을 갔다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한다는 것이다. 상태도 안좋으니 형제봉으로 바로 갈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상은 보고 가기로 했다.

혼자 다니는데다 날씨도 안좋으니 찍을 것이라고는 이런 것밖에 없다. 게다가 옆에 사람이 안비켜주면 딱 글씨만 찍는 수밖에 없다. 내려오면서 생각을 해보니 아무래도 그 사거리를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정상까지 가야 형제봉을 갈 수 있다고 한다. 오늘은 무슨 마가 꼈는지 분명히 내눈으로 이정표를 봐놓고 형제봉을 진입하는 코앞에서 방향을 바꿔 다시 정상쪽으로 갔다. 괜히 정상만 두번갔다 내려왔다.

형제봉에 도착하니 비까지 오기시작한다. 우비는 없었지만 바람막이 자켓으로 갈아 입고 다시 길을 걸었다.

광교산 정상만 가면 거기서 경기대까지는 가까운지 알았는데 거리가 꽤 멀었다. 무릎이 갈수록 시큰거린다. 내 몸 아픈데 체면이 뭐가 필요 있나 짬짬히 뒤로 걸어 내려왔다. 경기대 근처를 앞두고 해가진다. 그나마 렌턴까지 안가지고 갔으면 참 재미있었을 것이다.

랜턴을 안가지고 온 아저씨를 만나 같이 내려가다 보니 갈려던 최종 목적지인 '반딧불이 화장실'이 나왔다. 담배 하나 꼬나 물고 곰곰히 반성해본다. 아무리 근교의 낮은 산들이지만 "옥녀봉->매봉->석기봉->이수봉->국사봉->하오고개->바라산->백운산->광교산->형제봉->반딧불이 화장실"의 코스만 외우고 지도도 안가지고 오고, 위치도 제대로 파악도 안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 벌을 받은 것 같다. 산행을 했는데 오히려 일반도로를 많이 걷고 그곳을 걸으며 느꼈던 것이 많은 것 같다. 나중에 제대로 준비해 올바른 길로 다시한번 가보아야 겠다.

다시 경기대 후문쪽으로 나가 친구와 지인을 만나니 맛있는 장어를 거하게 한잔 사준다. 사실 난 따끈한 짬뽕이나 라면이 간절히 생각났다. 2차로 맥주를 마시고 11시쯤 지하철에 몸을 실으니 "집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생각났다. 집에와서 다시 맥주를 한잔한 후에, 잘려고 시계를 보니까 새벽 1시다. 술약속 지킬려고 24시간을 안자고 무슨 헛짓을 하고 다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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